1936년 손기정과 함께 마라톤 동메달을 딴 <마라톤의 지휘자 남승룡>
안녕하세요
오늘은 꼬꼬무를 보다가 고 손기정님은 다들 일제 시대에 금메달을 따신 분이라 저역시 배워서 알고 있었는데요. 이날 함께 3등을 하여 동메달을 따신 남승룡님이 계셨는데 모르고 있었네요.
항상 1등만 기억 하게 되는데 이분 역시 멋지고 광장한 분이시라 저도 포스팅하려고 합니다.
마라톤의 지휘자. 대한민국의 육상 선수. 1936 베를린 올림픽에서 손기정과 함께 마라톤에 출전하여 동메달을 획득하였으며, 1947년 보스턴 대회에서 서윤복의 코치로 참가해 12위로 골인하였다.
남승룡
출생:1912년 11월 23일 전라남도 순천군 장평면 저전동(現 전라남도 순천시 저전동)
사망:2001년 2월 20일 (향년 88세) 서울 송파구 국립경찰병원
본관:의령 남씨
학력:순천보통학교 (졸업)
양정고등보통학교(졸업)
메이지대 (철학 / 학사)
주종목:육상 마라톤
키:165cm
남승룡 선수 일생
1912년 전라남도 순천에 부잣집서 태어났다. 남승룡의 할아버지는 고을의 원님이었다고 한다. 재산과 땅이 어마어마 했다고 한다. 보통학교 6학년 때 전라남도 대표로 조선신궁대회에 출전하여 1만m에서 4위, 마라톤에서 2위를 차지하며 두각을 나타냈다.양정에도 달리기 영재로 스카우트 됐다고 한다.
남승룡은 실력과 노련미가 있었는데 초반에는 페이스대로 뛰다가 막판 스퍼트를 내고 뛰는 '후반의 사나이'라고 불렸다고 한다.
양정고보를 거쳐 일본 아사부중학으로 전학하였고 메이지대학[明治大學] 재학 중이던 1936년 일본 선발전에서 양정고보 1년 후배 손기정(孫基禎)을 제치고 우승함으로써 손기정과 함께 베를린올림픽 대표로 뽑혔다.
이어 그해 열린 제11회 베를린올림픽에서 당시 대표 선수 3명 가운데 조선인 선수가 두 명이나 출전하는 것을 꺼려했던 일본 육상연맹의 출전 방해 공작에도 불구하고
손기정 선수는 일등
그리고 남승룡선수는 2시간 31분 42초의 기록으로 동메달을 획득하였다.
손기정과 남승룡은 1912년 일제시대에 태어났기 때문에 태극기를 한번도 본적이 없고 이날 올림픽에서는 일장기를 달고 뛰었어야 했다. 그래서 손기정은 금메달, 남승룡은 동메달을 땄음에도 고개를 숙이고 있을 수 밖에 없었다고 한다.
금메달을 따 월계수로 일장기를 가릴 수 있는 손기정이 부러웠다고 남승룡은 후에 말했다고 한다.
8·15광복 후인 1947년에는 서른 다섯의 나이에 태극 마크를 붙이고 서윤복의 페이스 메이커로 참가한 남승룡은
제51회 보스턴마라톤대회에 출전해
우승한 서윤복(徐潤福)과 함께
12위를 차지(기록 2시간 40분 10초), 마라톤 한국의 위상을 세웠다.
1947년부터 1963년까지 대한육상경기연맹 이사로 활동하고 전남대학교 교수를 지내는 등 육상 발전에 힘썼으며, 1964년 도쿄[東京]올림픽에 마라톤 코치로 참가한 것을 마지막으로 육상계를 떠났다. 1970년 국민훈장 모란장을 수상하였다.
2001년 2월20일 향년 88세 지병인 심부전증으로 세상을 떠나셨다.
비록 베를린올림픽에서 우승한 손기정의 그늘에 가려 커다란 주목은 받지 못했고 비운의 2인자라고 불리웠지만 손기정과 함께 나란히 1, 3위를 차지함으로써 나라를 빼앗겼던 당시 조선인들에게 무한한 민족적 자부심을 심어 주었다. 누구보다도 진정으로 국가와 마라톤을 사랑한 분이 아니었나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