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3년 소아마비 외모콤플렉스로 시작된 공주판 살인의 추억 연쇄살인범 강창구
1983년부터 1987년까지 충청남도 공주 계룡산 일대에서 6명의 부녀자가 성폭행과 살해를 당하는 참혹한 사건이 발생했어요. 이 사건은 영화 ‘살인의 추억’에 모티브가 된 화성 연쇄살인 사건보다 3년 먼저 일어났답니다. 당시 이 사건은 화성 연쇄살인과 시기가 겹쳐 동일범이라는 추측도 있었죠.
1. 사건의 시작: 첫 번째 범행
1983년 7월 31일 저녁, 공주에 사는 50세 여성 A 씨는 계룡산 근처 계곡에서 실종됐어요. 당시 강창구(31세)는 A 씨를 물고문하고 성폭행한 후, 익사로 위장해 살해했답니다. 가족들은 A 씨가 단순 변사로 처리된 것을 알지 못한 채 무사히 돌아오리라 믿었죠.
2. 두 번째 범행: 7개월 후 다시 범행
1984년 2월 21일, 강창구는 낙암사에서 불공을 드리고 홀로 내려오던 51세 여성 B 씨를 성폭행하고 살해했어요. B 씨의 시신은 두 달 후 발견됐지만, 이미 부패해 정확한 사인을 밝히지 못했답니다. 이번에도 단순 변사로 처리되었죠.
3. 미수 사건: 세 번째 범행 시도
1984년 8월 19일, 공주에 사는 20대 여성 C 씨는 강창구의 세 번째 범행 시도에서 격렬히 저항해 살아남았어요. 이 사건으로 인해 마을에는 강창구에 대한 괴담이 퍼지기 시작했답니다.
4. 다시 낙암사: 네 번째 범행
1985년 7월 26일, 강창구는 낙암사로 통하는 길목에서 또다시 범행을 저질렀어요. 기도하러 가던 길에 30대 여성 D 씨를 성폭행하고 살해한 후, 현금을 빼앗아 달아났답니다. D 씨의 시신은 한 달 후 발견됐지만, 타살 정황을 밝히지 못했어요.
5. 다섯 번째 범행: 또 다른 희생자
1987년 1월 29일, 강창구는 낙암사로 가는 산길에서 47세 여성 E 씨를 성폭행하고 살해했어요. E 씨의 시신은 강창구가 나뭇잎 등으로 덮어놔 경찰이 발견하지 못했답니다.
6. 마지막 희생자 발생…인근 사찰 스님에게 결정적 증언 확보
1987년 4월 1일, 강창구는 마티고개에서 48세 여성 G 씨를 성폭행 후 살해했어요. 경찰은 중대한 사안이라 판단하고 대대적인 수색에 나섰답니다. 수색 중 뜻밖에도 5차 사건 피해자 E 씨의 시신을 발견했어요. E 씨의 시신은 겨울이었기 때문에 부패가 심하지 않았고, 흉기에 의한 상처가 발견되었답니다. 하루 뒤 G 씨의 시신도 발견됐어요. G 씨의 목에는 피멍이 들었고, 얼굴에는 손톱으로 긁힌 상처가 있었으며, 하의는 벗겨진 상태였죠.
경찰은 ‘연쇄살인’에 초점을 맞추고 탐문조사를 실시했어요. 이 과정에서 인근 사찰의 스님에게서 유력한 용의자의 인상착의에 대한 결정적인 증언을 확보했답니다. 용의자는 키 165cm 가량에 항상 검은 옷을 입고 다니는 30대 사시(斜視) 남성이었어요.
체포 과정: “잡으러 올 줄 알고 있었다”
경찰은 스님의 진술을 토대로 공주 옥룡동에 사는 ‘독신남’ 강창구를 찾아냈어요. 체포 당시 잠을 자고 있던 강 씨는 양손에 수갑을 차며 모든 것을 체념한 듯 “잡으러 올 줄 알고 있었다”며 체포에 순순히 응했고, 변사로 처리된 범행까지 자백했어요.
일찍이 부모를 잃고 외톨이였던 강 씨는 사시와 소아마비로 인한 신체적 장애로 인해 사회적 괴롭힘을 받아왔어요. 그로 인해 자아가 상처를 입었고, 그 분노와 증오, 욕망을 부녀자들에게 표출한 것이죠.
여성과의 교제 경험이 없었던 강창구는 외모 탓에 자신을 피하는 여자들에 대한 뒤틀린 감정을 풀기 위해 범행을 저질렀다고 진술했답니다. 연쇄살인 이전에도 절도, 폭력, 공무집행방해 등으로 2년 6개월을 교도소에서 보냈으며, 출소 후인 1983년 7월부터 1987년 4월까지 6명을 살해했어요.
사형 선고와 마지막 순간
강창구는 사형선고를 받았고 1990년 4월 17일, 흉악범 9명과 함께 사형이 집행됐어요. 마지막 가는 길에 그는 자신의 눈과 콩팥 등 장기를 기증했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