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리진을 기억해야 하는 이유
조선말 고종 때 프랑스에서 대리공사로 한국에 온 사람이 있었다. 그의 이름은 '콜랭드 플랑스'. 그는 외국공사들 앞 궁중연회에서 춤을 추고 있던 한 여인에게 반하게 되는데 그녀는 무희들 중에도 뛰어난 외모를 지니고 있었다. 서양인의 눈으로 봐도 그녀는 매력적인 미인이었고 그 무희의 이름은 '리진'이라고 한다. 프랑스 대리공사인 '콜랭드 플랑스'는 고종에 허락을 받아 리진과 함께 할 수 있게 되었고 둘은 함께 프랑스로 떠나게 된다. 리진은 조선말시대 한국여성으로 최초로 프랑스에 가게 되는 여인이 되었다.
프랑스에서 그의 콜랭드 플랑스는 그녀에게 프랑스말을 가르쳐 줄 수 있는 개인가정교사를 붙여주어 그녀가 언어를 익힐 수 있게 하였다. 그녀는 굉장히 빠르게 프랑스말을 배우게 되었고 그녀의 가정교사와 남편조차 놀라게 되었다. 이로인해 리진은 책을 읽을줄 알게 되었고, 프랑스의 문화와 더불어 세계의 문화와 언어 사회 전반적인것들에 눈을 뜨게 되었다. 특히 그녀에게 감명을 주었던 것은 성경이었는데, 그때 당시 조선은 여성의 인권이나 신분은 매우 낮았고 그로인해 서양의 종교, 특히 기독교의 사상은 많은 조선여성들에게 기독교를 더 쉽고 깊게 빠지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그녀 또한 성경을 통해 평등과 여러가지 사상을 알게 되었다. 또 그녀는 피아노 과외도 받게 되었는데 그녀의 예술적인 기량을 더 키우는 계기가 되었다. 그녀는 문화, 예술, 언어적인 면에서 점점 프랑스 사회에 빠르게 적응해 나갔지만, 시간이 갈수록 그녀는 더욱 움츠로 들게 되었다. 한국인 여성과는 다른 유럽여성들의 비해 왜소한 신체적 열등감과 낯선 유럽에서의 삶은 그녀를 점점 말이 없고 우울하게 하였다.
대리공사는 다시 한국으로 3대 공사로 부임하게 되어 리진과 함께 귀국하게 되었다. 리진이 귀국한 사실을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았는데 높은 관리가 리진이 귀국한 것을 알고 그녀를 남편의 눈앞에서 데려가게 되었다. 그렇다. 리진의 신분은 무희. 무희는 그당시에 가장천한 기생 천민계급이었다. 또한 그녀의 남편은 프랑스의 공사로 프랑스의 공사가 다른나라의 여자를 부인으로 하고 싶으면 프랑스 정부의 조사를 받아야 하는데, 리진의 천한 신분, 나라에 기생 무희로 속해 있던 그녀는 정식으로 프랑스남편과 결혼할 수 도 없었고, 신분제가 폐지 됐다고는 하나 그 신분을 벗어날 수는 없었다.
그녀는 이미 유럽의 자유사상과 평등사상을 경험하고 온 사람이었기에, 관노였던 자신의 신분과 처지를 받아들이기에는 현실은 너무 잔혹하고 냉담하였다. 결국 이런 생활을 견디지 못하고 금조각을 삼키고 자살하고 만다. 더이상은 버틸수 없었던 리진 선택은 죽음이었다. 리진의 마지막 선택은 자살이었다. 너무 일찍 앞선 시대를 살았고 혼자서 그 엄청난 경험을 감당해야 했던 리진에게 더이상의 출구는 없었다. 비록 비운의 짧은 삶을 마감했지만 그녀는 그녀에게 다가 온 운명을 기꺼이 받아들이고 자신의 삶으로 만들었다. 조선의 무희로서 자신의 삶의 치열했던 그녀는 최초의 근대 여성이었다. 이것이 우리가 리진을 기억해야 하는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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